연재(?) : 라디오 머리를 가진 아이 - 1

쉬폰케잌의 속살같은 파도가 잿빛 모래를 쓸어올린다.
그리고 아득히 먼 기억들을 싣고 와 잿빛 모래사장 위에 흩뿌려 놓는다.
라디오 머리를 가진 아이는 그 곳에서 태어났다.

그 때는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니었다.
하늘은 맑지도 않고 흐리지도 않았으며 기온 또한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확실치 않은 그날 그 시간에,
아이는 파도가 쌓아 놓은 낡은 잡동사니 더미를 헤치고 첫 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어찌보면 매우 비극적인 일이었다.

뻘겋게 녹슨 철과 같은 피부,
기름때 찌꺼기로 뒤범벅이 된 머리카락,
먹구름이 낀 듯 촛점 없는 두 눈과 온기라고는 느낄 수 없는 입술을 가진 아이는
처음부터 누구의 사랑도 받을 수 없었다. 

어쨌든 아이는 불행히도 세상에 떨어져버렸다.

여전히 아무것도 확실치 않은 날들이 몇번인가 수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추고 난 어느 날......
아이는 문득 자신이 파묻혀있던 잡동사니의 산을 기어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비록 누구의 축복도 받을 수 없었고 심지어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결정이었지만
그것은 그가 최초로 자의에 의해 실행에 옮긴 행동이었다.

발목을 잡는 쓰레기 더미를 헤치고 수도 없이 미끄러지면서도 아이는 마침내 꼭대기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머리 꼭대기 어디쯤에 엉망으로 구부러져 있던 철사 한줄을 힘겹게 펴기 시작했다.
철사를 다 펴고 난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 그것을 표정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구부러진 안테나를 통해 매일매일 몇 억 광년이나 떨어진 별에서부터 흘러온 다른 이의 꿈을 듣는 것이 라디오 머리를 가진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분명 외로운 하루하루였을 것이다.
허나 아이는 그것이 외로움인지 몰랐다.
외로움 이외의 다른 감정을 단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와 아이의 시간은
그렇게 주변을 가득 메운 쓰레기들과 함께 언제까지고 변함없이 썩어가고 있었다.

by bigmann | 2008/04/29 02:34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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