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개구리와 상처 투성이 공주님 이야기.

 이 이야기는 동화다. 동화의 끝은 언제나 해피엔딩이어야 하고 물론 이 이야기 역시 그렇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햇빛조차 들지 않는 어두운 숲 속 시커멓게 썪은 늪 한구석에 개구리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달도 채 차지 않은 남쪽 하늘에 물고기를 닮은 별이 빛나는 밤을 골라 태어난 생명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 역시 탄생과 동시에 운명의 여신에게 고독이란 선물을 받았다.
 그가 언제부터 그 곳에 있었는지는 그 자신조차 몰랐다. 끔찍한 독사와 거대한 철 수레를 피해 도망 다니다 정신을 차린 곳이 우연히 그 곳이었을 뿐이다. 먹을 것이라고는 비쩍 마른 모기 몇 마리와 기분 나쁜 모양의 이끼 밖에 없었지만 그는 그 곳이 마음에 들었다. 비밀스럽고 음산한 분위기가 자신과 닮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길잃은 스산한 바람 외에는 딱히 이야기를 나눌 상대조차 없는 그 곳에서의 생활도 그에겐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다.

 어느 날 평소처럼 늪 속을 헤엄치다 우연히 고개를 내밀었을 때 그는 늪에서도 가장 악취가 심한 구석에 낯선 그림자 하나가 있음을 발견했다.
 모든게 검정인 그 곳에 절대 있을리 없는, 새하얀, 인간. 여자.
 지리하리만치 음울한 바위 위에 농담처럼 사뿐히 앉은 그녀를 본 순간 그는 그녀가 틀림없이 어느 나라인가의 공주일 거라고 확신했다. 왜 그런 확신이 들었는지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대체 공주가 아닌 그 무엇이 감히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모습에서 문득 오래전 어느 봄날의 공기내음을 떠올린 그는 결국 자기도 모르게 개골, 소리를 냈다. 그리고 살짝 놀란 듯 돌아본 그녀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가 그녀에게 먼저 다가간 것은 결코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 숲에 들어오기 전 그는 이미 몇 명의 인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들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이란 그저 위험하고, 잔혹하며, 자신들 이외의 생명을 존중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동물이었다. 그런 맘에 안 드는 것에게 호기심을 느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가슴이 시렸을 뿐이다. 겨울잠을 자려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했지만 그녀의 젖은 두 눈을 본 순간부터 가슴속에서 밀려오는 원인 모를 통증이 그를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 쪽으로 향하게 했다.
 아무도 기댈 이 없는 곳에서 비록 추악하나마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데에서 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평소 같았으면 몸서리를 치며 줄행랑을 칠 법한 그를 들어 가만히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 또한 그를 바라보았다. 침묵 속에서 둘은 서로의 체온을 가만히 공유하고 있었다.

 정적을 깨고 먼저 입을 연 쪽은 그녀였다. 아마 개구리가 아니라 작은 조약돌이었어도 상관없었으리라. 오감이 먹먹해질 정도로 적막한 숲 속에서 고독에 지쳐버린 인간은 으레 무언가에게 고해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게 되기 마련이고 우연히도 이번에는 개구리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녀는 벽을 보고 이야기 하듯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들과 스쳐 지났던 사람들, 보았던 풍경들......그리고 사랑했던 것들...... 그녀의 길고 긴 이야기 속에서 개구리는 지금 껏 단 한번도 꿈꿔보지 못한 아름다운 것들과 사랑스러운 추억들을 만나고 느꼈다.
 하지만 개구리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그건 굳이 엉망으로 더럽혀진 그녀의 두 뺨을 보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 주변을 부유하는 공기의 색과 그 너머로 일렁이는 눈동자가 그것을  말해주었다.
 그는 지금껏 아무도 볼 수 없었던 그녀의 상처들을 보았다. 그는 그 상처들이 너무 아팠다. 점액질로 가려진 그의 피부에도 역시 같은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밤낯도 구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들만이 눈부시게 빛났다.
 그녀의 목소리에 싸여 잠이 들 때마다 그는 기도했다. 여신이여. 비록 제게 가혹한 고독만을 내려 주신 당신이지만 만약, 아주 만약 조금의 자비가 남아있다면 지금 이토록 아린 그녀의 목소리가 영원히 멎지 않게 하소서. 이 미물을 향한 눈길이 영원히 돌아서지 않게 하소서. 만약 이 나날이 동면간의 몽롱한 꿈일 뿐이라면 다시는 봄이 오지 않게 해 주소서. 제발......

 흐느끼듯 눈을 떴을 때 다행히도 그녀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그는 아직 차가운 공기를 헤치고 서둘러 그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들을 모아 보았다. 말라 비틀어진 색색의 버섯과 살찐 지렁이 몇마리와 그나마 덜 시든 작은 꽃잎 몇장......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자신의 하찮은 보물들을 그러모아 잠든 그녀의 발치에 놓아두었다. 그녀의 곁에서 그의 마음들은 더욱 초라해 보였다. 그래도 그는 그것들이나마 그녀에게 줄 수 있음에 행복했다. 그리고 겨우 그것들 밖에 줄 수 없음에 가슴 아팠다.
 일을 마친 개구리는 그녀의 평화로운 숨소리를 소중히 지켜보았다. 그러는 동안 조금씩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갑자기 모든 것에 감사했다. 심지어 지난 날들에 받아 온 형벌까지도......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룩한 감정을 향해 오래도록 눈물 흘리던 그는, 이내 지쳐, 다시, 잠들어 버리고야 말았다.

 선잠에서 깨어나 선물을 발견한 그녀는 기쁨 같기도 하고 자조 같기도 한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그가 남긴 것들을 양손에 거두어 잠시 우수 어린 눈길로 어루만지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마침내, 그녀는 개구리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 짧은 순간 세상은 회전을 멈추었고 어디선가 신비로운 향기를 머금은 햇살 한줄기만이 내려와 그녀와 그를 비추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시간 후, 모든 의미가 사라져버린 늪에는 미친 듯 뛰어다니는 개구리 한마리만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떠났다. 소리없이 일어나 맨발로 떠났다. 다시 찬란한 그녀의 세상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모든 것은 언젠가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다. 그녀 역시 그랬다. 개구리가 있을 곳이 늪인 것 처럼 공주가 있어야 할 곳은 왕궁이었다.
 들어줄 이 없는 원망을 외치며 개구리는 뛰었다. 아무리 높이 뛰어도 그녀를 찾을 수 있을리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이제 개구리에겐 그런 일들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절망의 색을 띈 암흑이 켜켜이 쌓인 숲 속에 폴짝폴짝 그의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만이 무심하게 울렸다.
 그러나 그는 울지 않았다. 개구리가 우는 것은 사랑을 고백할 때와 어머니를 그리워 할 때 뿐이다. 그 외에는 절대 울어선 안된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고독과 싸우며 배운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기술이었다. 대신 그는 헤엄을 쳤다. 눈물이 얼룩으로 가려지고 흐느낌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늪에서도 가장 진득진득한 곳으로 가서 헤엄을 쳤다. 숨쉬기가 어려웠지만 앞으로 그의 목을 죄어 올 미련과 추억이라는 형벌 보다는 차라리 나은 편이라 생각했다.

 잔인한 운명은 언제나 그렇 듯 모든 것을 흩어 놓았지만 시간은 그 모든 것을 다시 제 위치로 되돌려 놓았다. 개구리는 늪 속에 남겨졌고 실수로 길을 잘못 들었던 공주는 다시 왕궁으로 돌아갔다. 슬퍼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른 모든 동화가 그렇듯 이 이야기 역시 해피엔딩이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이야기에는 기적 따위가 없다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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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작성했던 1편에 2편을 덧붙여 마무리했다.
다 쓰고 문득 귀 기울여보니 밖에 비가 오고 있었구나.

by bigmann | 2008/12/10 03:27 | 소설과 스케치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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