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15일
샤워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며 샤워기가 말했다.
"넌 참 형편없는 놈이야."
나는 비누를 집으려다 말고 그 불쾌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향해 대답했다.
"뭐가 어째?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 따위로 지껄이는 거야?"
"흥분하기는......난 어디까지나 내가 알고 있는 사실에 기반해서 말하는 것 뿐이야. 그리고 그에 따르면 넌 정말 최악이야."
"웃기고 있군. 겨우 샤워기 주제에 나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넌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절대 몰라."
부스 안이 뜨거운 김으로 가득찼다.
"내가 너를 모른다고? 그래. 그렇다면 넌 나를 아니?"
"알 턱이 있나. 내가 왜 하루종일 욕실에 목매어 있는 샤워기 따위에 대해 알아야 하지?"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샴푸통이 부풀어 오르다가 마침내 뻥하고 토악질을 했다. 샤워기는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 네 말대로라면 넌 나를 몰라. 그러니까 내가 뭘 알고 있는지도 모르지. 내가 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내가 너에 대해 모른다고 단언할 수 있지?"
참을 수 없이 화가 난 나는 부스를 열고 나와 수건으로 녀석의 침을 털어냈다. 여전히 피부는 축축했다. 대충 옷을 챙겨입고 문을 나서는 내 등뒤로 샤워기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역시 넌 형편없는 놈이야."
나는 문을 있는 힘껏 닫았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 by | 2009/03/15 01:26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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